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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 32회 문화재수리기술자(보수)-2

  •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0-12-03 17:06:45
  • 조회수
    243

문화재수리기술자[보수] 시험

 

합격생 수기

 

2014년 제 32회 문화재수리기술자(보수)

 

 

 

 

 

-방향과 믿음-

 

방향과 믿음

 

 

저는 2013년에 1차 합격하고 2차 불합격 후, 2014년에 2차 통과한 올해 52살 된 두 딸아이의 아버지 입니다.

 

계속 공부해 오신 수험생 분들과 또는 새롭게 수험과정에 입문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조금 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쑥스럽지만 그 동안의 과정을 정리해 봅니다.

 

 

 

1. 결심

 

 

22년의 직장생활을 접기 위해서는 그 결심을 포장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사업을 펼칠 용기와 자신이 없었던 나에게 후배의 한옥학교 경험담은 탈출구가 될 수 있었고, 3년내 도편수라는 그럴 듯 한 목표를 만들게 해주었다.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멋있다’와‘미쳤다’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나와의 친밀도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진정성에 비례하여 비난의 강도가 높았고, 자연스레 주변인들이 구분 지어졌다는 점이다.

 

 

3개월 간의 한옥학교(청도)의 생활은 3년 내 도편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비록 몸이 뜻 같지는 않았지만 일과를 마치면 반드시 이론과정을 다시 정리하고, 주말에도 청도군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학교에서 보수기술자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지만, 책상물림은 지긋지긋 했던 터라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더욱이 한옥학교에서 희망자에게 제본하여 준 보수기술자 합격생(졸업생)의 두 권짜리 정리 노트를 본 뒤로는 혹여 그 길로 들어서게 될까 두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배치 받은 현장생활은 짧게 끝났다.

 

학교에서 목도를 하면서 허리를 삐끗했고 그 통증이 심해진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가장 중시하는 일머리가 부족하고 경험도 없는 나이 많은 초보 목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한가로운 현장은 거의 없다.

 

 

작은 집을 직접 짓기로 하고 설계를 했다. 규모는 3칸에 맞배집.

 

학교에서 배운 대로 원목을 직접 켜서 치목을 했다. 결구되는 부분은 모눈종이에 전부 도면으로 그렸고, 몇 번씩 확인했다. 조립 시 단 하나의 착오도 없이 하루만에 상량이 이루어졌다. 조립을 돕기 위해 달려온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목수인 한옥학교 동기의 감탄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큰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후 수장, 배선, 미장, 온돌, 기단 작업 등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 이었다.

 

1년여의 집 짓기가 완료된 후 남게 된 것은 결심뿐 이었다.

 

 

내 집을 지어 보았다고 수주 할 수도 없고, 먹줄을 놓을 수 있다고 갈 수 있는 현장도 없었다. 여전히 초보 목수인 것이다. 한옥학교 졸업과 연계 시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수기술자가 유일했다. 우려 했던 수험생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2. 선택

 

 

2012년 5월 보수기술자의 길을 결심 한 후, 2012년 시험은 경향 파악을 위해 한번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기출문제를 접해보니 2014년까지의 3번의 기회 안에 합격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섣부르게 결심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학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사이트에 접속하여 보니 모의고사 과정이 눈에 띄었다. 기왕에 볼 시험이면 몇 개 찍어 외워서 볼 요량으로 수강가능 여부를 확인해 보니 어떤 학원은 모의고사과정은 초보자는 불가 하다고 되어 있다. 마침 한솔학원이 집에서 가까워 연락해 보니 수강 가능하지만 그 보다는 하반기 교육과정의 수강이 더 나을 듯하다고 사무직원분이 친절하게 상담해주며 공개강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합격의 단초가 된 통화였다.

 

 

5월말 대략 60여명으로 가득 찬 공개 강의실은 내가 예상했던 학원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수강생들 간 무척 친근했고 교수님과도 격의 없어 보였다.

 

윤교수님의 ‘문화재수리기술자(보수)’ 책자를 그때 처음 보았다. 내용은 잘 몰랐으나 이렇듯 정리된 책자가 있다는 것이 정말 반가웠다. 깨알 같은‘합격생 정리노트’그리고‘목조’의 70년대 활자체에 질린 나에게는 책자로 정리된 교재의 존재 자체가 고마웠다. 속사포 같은 공개 강의, 수험생의 분위기 등에 끌려 하반기 강의와 모의고사 강의를 모두 등록 했다. 우습게도 이때 까지도 모의고사반이 예상문제 풀이하는 강의로 알고 있었다.

 

 

등록 전 쉬는 시간을 이용 교수님께 면담 요청하고 짧게 상담을 했는데, 상황을 들으시고 다소 무덤덤하게 수강 여부 결정하라 하셨다. 마음속으로 등록을 결정 한 터라 개의치 않았지만 만약 전화통화를 교수님과 했다면 공개강의에 참석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 통화한 사무직원(이름 모름)이 고맙다.

 

이렇게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3. 수험생활 - 방향잡기

 

 

일요일 오후의 강의와 주중의 도서관 생활이 시작 되었다.

 

상반기 강의 되었던 내용이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강의는 처음 한달간 너무 벅찼으며, 수업전 1시간 동안 치루어지는 전주 내용의 시험도 아주 버거웠다. 숙제도 오래 걸리고 도면도 어렵고 글씨도 맘에 안들고 무엇 하나 잘 하는 게 없었다.

 

단, 시간관리는 철저하게 했다. 도서관과 집에서 식사시간 휴식시간 빼고 14~15시간 스톱워치로 확인해 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했다.

 

힘은 들었지만 즐거웠다. 2012년 시험은 부담 없이 보는 시험으로 상정하되 무의미하게 보지는 않겠다 하는 마음가짐이 공부를 즐겁게 했고, 공부해야 할 것이 명확하게 주어진 상황이 2013년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객관식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은 양을 확실하게 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한국사는 국정교과서(7차)로 건축사는 김동욱교수의‘한국의건축역사’만 보기로 했다. 단 완전히 외웠다. 한국사는 년도와 주석 그림까지 모두 외웠고 건축사는 근대를 제외하고 90%이상 외웠다. 문보법은 하상삼 교수님의 책으로 10번 정도 정독 했다. 객관식 공부 방법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달리 방법이 없었다.

 

 

7월말 모의고사반이 개강을 하면서 고비가 찾아왔다. 샘플로 받게 된 전년도 합격자의 답안과 모의고사 우수답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한 답안은 2013년이 되어도 작성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였다. 게다가 도면이 외워지지 않았다. 도면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교수님이 나누어준 반드시 외워야 하는 도면 40여개중 10여개도 확실하게 외워지지 않았다. 전날 외운 것도 하루 지나면 거의 백지 상태가 되어 좌절케 했다. 마침 올림픽 기간과 겹치면서 도서관에서 집에 오면 올림픽 하일라이트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략 열흘 정도 방황하다 도면을 20개만 외우자고 정하니 마음이 가벼워 졌다. 다시 집중하고 2012년의 합격가능성을 20% 까지만 올려 보자고 다짐했다. 시작 할때는 1%도 안됐는데 그만 하면 정말 큰 발전이다 생각 하면서…

 

모의고사반이 예상문제 중심이 아니고 기출문제 중심에 예상문제가 가미되는 형태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게 답안 작성하는 방법 즉 고기 낚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교재 목차의 일목요연함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고, 시공 답안 서술형태의 틀이 머리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모의고사 시간이 짧게 느껴지게 되었다. 답안의 수준은 여전히 낮았지만 점점 나아졌다.

 

 

9월초가 되면서 1달만 먼저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한 해를 뒤 돌아 보았다.

 

교수님이 자주 얘기 하시는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무의미 하다’는 말씀이 와 닿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지는 많은 자료에 방향의 정확성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중요해 보이는 너무 많은 자료가 제공되어 충실히 받아 들이는 것 외에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자료들이 숙지 되면서부터 기본 틀이 인지 되어지고 그러한 틀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두껍게 보이기만 하던 교재가 목차 형태로 머리 속에 그려지게 되면서 올바른 방향의 중요성과 의미를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교재와 10여권의 필독서를 중심으로 기본을 정립하고,

 

50점 문제로 30여개, 25점 문제 50여개를 선별하여 중점적으로 숙지 후,

 

대략 30여개의 도면과 10여개의 석탑등을 외운 상태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가능성 20%는 된다고 생각 하면서…

 

 

 

4. 수험생활 - 경향 파악

 

 

1차 시험결과

 

구조 25점, 시공 54점

 

한국사 92점, 건축사 72점, 문보법 88점

 

평균 66점 구조 과락으로 불합격.

 

 

1차 점수 발표는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불합격은 당연했는데, 시공과 구조의 점수가 예상 보다 너무 높게 나온 것이었다.

 

구조 문제가 공심돈, 사고등 많이 황당했는데 나는 그것이 나의 공부기간의 짧음의 한계로 생각하고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25점 한 문제에 대한 점수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2013년 방향 잡는데 참고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25점 즉 만점이 나왔다.

 

 

응시자 점수가 너무 낮아 시공 ․ 구조 모두 10점 이상 올려 주었다고 추측된다.

 

학원에서는 전열에 앉는 우수생들 거의 대부분인 15명이 대거 합격했다.

 

공심돈을 준비하고 기술한 사람은 2~3명이고, 다른 사람들의 공심돈에 대한 지식의 수준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공부 연한의 차이였다. 내가 모르면 남들도 모를 것이라는 확신.

 

아는 대로 기술할걸 하는 아쉬움에 괴로웠지만 경향 파악은 확실하게 했다.

 

교수님의 지도방향이 정확하다는 것, 객관식 공부 방법, 그리고 잘 모르더라도 쥐어 짜듯이 기술 할 것 등…

 

 

 

5. 수험생활 – 실전

 

 

2013년 1월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과에 대한 중압감 탓인지 하루 13시간 이상 공부 하기가 어려워 지면서 스톱워치로 시간 재는 것도 그만 두었다. 이 시험의 불확실성이 합격 가능성을 80% 이상으로 끌어 올리기는 불가능 하겠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짓 눌렀다.

 

시간을 나누기로 했다.

 

 

1차로 5월까지 전체 완료.

 

그리고 7월말, 8월말에 2차 3차 완료 목표로 일정 계획을 수립했다.

 

5월까지는 조금 넓게 공부하기로 하고,

 

대략 50여권의 관련 서적을 읽고, 중요 사항 정리 했다

 

수리보고서는 문화재청에 올라 있는 자료 중심으로 전부 보았으며 중요사항 정리했다. 용어집은 별도로 두고 정리했다. 도면은 기본 도면 40여개 외에 국보는 모두 외우고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도면은 추가하여 전체 60여개 도면을 외웠다,

 

석탑은 20여개 외웠다. 그리고 더 이상의 도면은 외우지 않기로 했다. 남들도 모르리라 생각 하면서. 결국 이로 인해 사단이 나게 되었지만…

 

 

객관식은 2012년과 동일한 방법으로 공부했으며 시간은 훨씬 단축 되었다.

 

 

7월 이후에는 객관식 전체를 다시 보는데 3일이면 가능하게 되었다

 

7월부터는 3일에 한번 스스로 모의고사를 랜덤 하게 뽑아서 보았다.

 

9월에 실시된 학원 최종 모의고사에서 괜찮은 점수가 나왔다.

 

최선을 다해 준비 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두번째 1차 시험에 응시했다.

 

 

 

6. 면접

 

 

1차 시험결과

 

구조 56점, 시공 43점

 

한국사 80점, 건축사 92점, 문보법 72점

 

평균 68점 1차 합격.

 

시험 결과에 너무 기뻤다.

 

 

구조는 어느 정도 확신 했으나, 시공에서 자신이 없었다. 1칸 다포계 건물의 도면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해서 그렸고 그로 인해 시공 전체 시간 안배가 이루어 지지 못했다. 합격 가능성을 50% 이하로 보고 있던 터라 기쁨은 컸다.

 

하지만 그 대가 또한 컸다. 1차 탈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2차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1차 합격자 15명중 학원에서 9명이 합격했다.

 

학원생 합격률이 갈수록 높아진다.

 

면접대비 스터디 그룹이 결성되고 강도 높게 준비가 이루어졌다.

 

교수님의 경험과 열정이 또 빛을 발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두뇌는 컴퓨터와 아주 유사한 구조라 생각된다.

 

기억하고 있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가 화면에 출력된다고 해서 바로 프린터 또는 스피커로 출력 되는 것이 아니고 별도의 경로와 프로그램이 설치되어야 하듯이,

 

두뇌에 기억된 내용을 필기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말하기 위한 새로운 경로를 훈련으로 뚫어야 하고, 내용 또한 새롭게 갈무리 해야 한다. 집중적인 훈련은 짧은 시간 내에 괄목한 성과를 보였다.

 

 

2013년의 면접은 그 전과는 달랐다

 

실무 보다 건축사, 이론 등이 강화된

 

면접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돈스럽게 하는

 

그러면서도 공부 적게 한 사람은 잘도 골라낸다.

 

2차 불합격.